본문 바로가기
[그때그때 생생화보]/추억만들기

[2018년 12월 30일] 강화 답사(용흥궁,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9. 1. 6.

[2018년 12월 30일] 강화 답사(용흥궁,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용흥궁은 청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Daum백과]

 

문화재 지정:인천유형문화재 제20호(1995년 3월 1일 지정)  /  위치: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 424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Daum백과]

 

<문화재 지정:사적 제424호(2001.01.04 지정)    / 위치: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건축양식이 성당인데 특이하고 독특했다 처음에는 절간 같은 느낌, 한국식 전통 한옥으로 지은 특이한 성당이였다.

성공회 하고,

 

 대한성공회 강화성당(大韓聖公會 江華聖堂)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에 세워진 성공회 성당이다. 강화읍에 있기 때문에 강화읍성당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지어진 한옥 성당이다.[1] 2001년 1월 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2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4리 422번지에 있고, 한옥 형식으로 된 건물로 유명하다. 강화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성당이기도 하다.

1981년에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지정되고, 강화군인천광역시에 편입 되면서 인천광역시 지방유형문화재로 변경 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성공회 강화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424호로 지정 되었다. 보호면적은 6,452m2이며, 대한성공회 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당주변에는 강화군청, 강화읍사무소, 용흥궁, 강화초등학교, 고려궁지 등이 위치해 있다.

2009년에는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30대 남성에 의해 방화가 시도 되었으나 감시원에 의해 발각되어서 화재를 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3]

 

[역사]

1896년(고종 33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 한국이름 고요한)가 건립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며,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1915년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으며, 당시 한글로 기록된 사제 서품장은 예배당 내에 보존되어있다.

 

[건축물의 특징]

교회의 내부는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외관은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강화읍 성당은 입구 계단, 외삼문과 내삼문, 성당 건물, 사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삼문은 솟을대문에 팔작지붕으로, 현판에는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는 글이 한문으로 쓰여져 있다.

동쪽에 초대 사제의 묘비가 서 있다. 내삼문은 평대문에 팔작지붕으로, 서쪽 칸은 종각으로 쓰여 감사성찬례때 사용하는 종이 걸려있다.

성당의 현판에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글이 한문으로 써져있고 팔작지붕과 돌로 되어 있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 내외부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한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0칸의 바실리카식 평면구성으로, 내부공간은 교회기능에 충실하도록 연출하였다. 초기 성공회선교사들의 토착화 의지가 나타나 있는 성당건물이다.

                                 [다음백과 사전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