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부여 마을 문화]<장암면/점상리편> 정찬응

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
百濟一日一史
부여의 백제예술문화(扶餘의 百濟藝術文化)점상리(店上里)
장암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산악지대를 이루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냇물 따라 펼쳐진 들에 점상리는 자리한다. 옛날에는 지금의 남면 및 구룡평야를 바라보는 산마루여서 선비 및 시인 묵객이 한번쯤 찾아서 인생을 회고하는 자리로 소문났으며, 장안에서 대감들이 말하기를 구룡의 탁류와 청류를 보았는가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지금의 점상리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쪽을 가리킬 만큼 소문난 명소였었다고 한다.
백제 때는 가림군(加林郡)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가림군(嘉林郡)에 속했었다. 백제 멸망 후 백제 유민들이 일시 정착하였으나 후대에 이을 집성촌은 형성하지 않았으며 고려 때는 임천군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임천군 박곡면의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임천군 박곡면 지역으로서 점말 위쪽이 되므로 윗점말 또는 상점리라 하였는데, 고종 32년에 북박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지경리, 구리곡리의 각 일부와 홍산군 남면의 마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점상리라 해서 부여군 장암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덕림(德林) 마을에는 고려말 이방원(李芳遠, 조선 태종)의 스승이었던 풍양조씨 회양도호부사(淮陽都護府使) 조신(趙愼)의 묘(墓)와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마을별로는 지형이 마치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국이라 하여 묘티(描峙), 고이티라 부르고 박씨들이 처음 정착한 마을이라 하여 박골, 고개의 지형이 중의 바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발티, 그 아래 마을도 발티, 옛날에 왜가리가 많이 날아왔던 마을이라 하여 왁새말 또는 학촌이라 불리는 마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