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정(고향)소식]/부여군 지리
[찾아가는 부여 마을 문화]<장암면/석동리편> 정찬응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5. 6. 17. 11:02

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
百濟一日一史
부여의 백제예술문화(扶餘의 百濟藝術文化)
석동리(石東里)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금천이 금강에 유입하는 그 남쪽에 위치한 낮은 야산지대와 들에 석동리는 자리한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임천면과 경계를 나누는 추성산을 중심으로 테뫼식으로 쌓은 이목티산성(梨木峙山城)이 있어 백제 때는 사비성을 지키는 중요한 지역이였음이 입증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백제 때는 가림군(加林郡)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가림군(嘉林郡)에 속하는 북단이었다. 백제 이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백제 멸망후 마을은 쇠퇴하여 갔으며 작은 한촌으로 남았다. 고려 때는 임천군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임천군 북박면의 지역이었다.
고종 32년(1895)에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북박면에 편입되었다가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우리, 산동리의 각 일부와 남내면의 장암리 일부와 부여군 천을면 내리의 일세촌을 병합하여 석우와 산동의 이름을 따서 석동리라 하여 부여군 장암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햇빛의 밝은 곳에 있으므로 양촌, 양지말, 골짜기에 마을이 있어 골말, 마을에 돌모랭이가 있으므로 돌머리, 석우라 부르고, 강막을산 앞에 있는 마을인 산동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고, 백제 때의 토성인 이목티산성(梨木峙山城)이 있고 한재가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던 강막을산 산제당이 있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박물관 부여군지 네이버지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