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397

무릉도원 무릉도원 최규학 무릉도원이어서 복숭아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복숭아꽃이 피어서 무릉도원이다 홍매화처럼 성스럽지 아니하고 장미꽃처럼 속스럽지도 아니한 복숭아꽃의 은은한 붉음이 무릉도원을 만든다 저 꽃 붉을 때 마음도 붉어 사람과 사람 사이 개와 닭 사이 어린아이들처럼 어우러진다 저 꽃 붉을 때 얼굴도 붉어 사람도 꽃이 되어 핀다 짐승도 꽃이 되어 핀다 복숭아꽃 붉을 때 마을은 무릉도원이 된다. 2024. 4. 23.
친구의 부음을 듣고 친구의 부음을 듣고 최규학 멍하니 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친구의 영혼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손을 흔들어 주려고 골똘히 바라보았습니다 어디선가 가랑잎 하나 내 앞에 오더니 바람 따라 춤을 추었습니다 짧은 순간이 지나자 쌓여있는 낙엽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친구님이 내게 오신 것인가? 친구여! 앳된 소녀였던 친구여! 무엇이 그리 급해 시들기도 전에 떨어지십니까? 꽃이 되어 돌아오소서 별이 되어 돌아오소서 불타는 꽃을 보면 친구인 줄 알겠나이다 빛나는 별을 보면 친구인 줄 알겠나이다 2024. 4. 3.
일어나거라 일어나거라 최규학 달리다 쿵!* 넘어지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어서 일어나거라” 산다는 것은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 바람이 불면 누었다 일어나는 풀처럼 다시 일어나는 것 인생길을 가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헛디뎌 넘어지고 누가 자빠뜨려 넘어지고 지치고 아파서 넘어진다 일어나기 힘들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어서 일어나거라” *달리다 굼(Talitha cumi) : 소녀여 일어나라(마가 5:41), 예수가 죽은 12세 소녀를 살리실 때 하신 말, 가장 위대한 일어남 2024. 4. 2.
뒷산 뒷산 최규학 우두커니 서 있는 뒷산 고마운 줄 몰랐더니 한겨울 찬바람을 등이 해질 때까지 막고 있었다 한여름 폭우를 온몸이 불어터지도록 마시고 있었다 죽은 사람 꽃으로 필 때까지 안고 있었다 우리 동네 집들을 통째로 짊어지고 있었다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023.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