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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397

봄 같은 사람 봄 같은 사람 최규학 나는 봄 같은 사람 되고 싶다 1월의 얼음을 녹이는 2월 같은 사람 2월의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3월 같은 사람 언 땅에 별빛을 뿌리는 농부 같은 사람 엄마 젖 냄새나는 유채꽃을 흔드는 봄바람 같은 사람 매화꽃에서 목련꽃으로 다시 벚꽃으로 자신을 쪼개어 주고 화려하지만 욕심내지 않고 푸른 잎에 자리를 물려주는 봄꽃 같은 사람 차가운 땅을 뚫고 나오는 꼬맹이들을 따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찬 바람에 멍든 나무들을 진달래꽃 웃음으로 쓰다듬는 봄 엄마 같은 사람 되고 싶다 2022. 2. 14.
내가 절에 가는 이유 내가 절에 가는 이유 시인 최규학 내가 절에 가는 이유는 대웅전에 모셔놓은 부처님 상에 절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법당에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다 해탈한 스님을 만나 번뇌를 없애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리 건너 궁궐 같은 절 집을 보고 감탄하려는 것도 아니며 늙은 나무의 영광을 보며 힐링하려는 것도 아니다 절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나를 보러 절에 가는 것이다 절에 가면 나를 볼 수 있을까 하여 절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나를 못 보고 돌아온다 2022. 2. 4.
우리 동네 팽나무 우리 동네 팽나무 최규학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우리 동네 팽나무는 우리 동네에서 바위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가장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도 팽나무에 올라가 놀았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팽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우리 동네 팽나무가 볼 때 동네 사람 모두가 어린아이다 우리 동네 팽나무는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과 함께 다 보았다. 흥부네가 부자가 되고 놀부네가 가난해지는 것도 보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더 강한 사랑과 오 부차의 와신과 월 구천의 상담보다 더 강한 미움도 보았다. 알을 깨고 아브락사스를 찾아가는 새처럼 마을을 떠나는 사람과 이몽룡처럼 금의환향하는 사람도 보았다. 우리 동네 팽나무가 볼 때 이런 것들은 모두가 한 조각 뜬구름이다. 우리 동네 팽나무가 가장 잊지 못.. 2022. 1. 31.
인생의 주소 인생의 주소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인 것을……. 어느 이른 아침, 커피가게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내 앞에 남루한 옷을 입은 비쩍 마른 한 여인이 커피 한 잔의 값을 치루기 위해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세고 있자 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저기 있는 빵도 하나 가져가세요.” 여인이 잠시 멈칫하자, 직원은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는 거예요. 오늘이 제 생일 이거든요! 좋은 하루 되세요.” 그 여인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빵 하나를 들고 나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내가 그 남자 직원에게 말했다. “생일 날 그 여인을 위해 빵을 사 주다니 멋집니다! 생일을 축하해요!” 계산대의 직원이 고맙다는.. 2022.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