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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본동이야기]/송파 이런저런소식

[女 세상의 중심] 여자라서 포기하면 엑스트라, 승부 걸려면 두배 용감해져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1. 22.

[女 세상의 중심] 여자라서 포기하면 엑스트라, 승부 걸려면 두배 용감해져야
정치인ㆍ행정가 경험 책으로 펴낸 김영순 송파구청장
가장 아쉬운 정책은 출산 장려금 도입 아이 잘 기를수 있는 환경 만드는게 우선 
`최초`타이틀보다`최고`가 훨씬 어려워 공직진출 꿈꾼다면 헌신할 자세 가져야

언어 감각이 톡톡 튄다. 김영순 송파구청장과 인터뷰하기에 앞서 그의 책 `최초는 짧고 최고는 길다`를 읽으며 받은 인상이다. `여자라고 물러서면, 여자라서 물먹는다` `두말 말고 두 잇(Do it)` `리더(reader)에서 리더(leader) 난다` 같은 눈길 가는 중간 제목 때문만은 아니다. 문장이 편하면서도 정확했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리듬이 경쾌했다.

송파구는 2006년 김영순 구청장 취임 이후 우측보행과 여권 즉시발급 서비스, 수영장 여성보건할인제도를 전국에서 처음 시행했다. 걷고 싶은 거리 조성, 어린이 전용 도서관 건립, 행복나눔일자리센터 개소, 여성이 행복한 도시 만들기 등 발 빠른 창의적 행정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모았다.

김영순 구청장은 지난해 10월 유엔이 수여하는 `2009 리브컴 어워드`를 받았다. `환경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 있는 상으로 호주 골드코스트, 로건과 경합해서 이겼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여성을 지칭하는 `알파걸`의 1세대이자 `워커홀릭 구청장`이 언제 이런 책을 써낼 수 있었을까. 혹시 누가 대필해 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 구청장은 "고교 시절 문학소녀였고, 품은 뜻이 있어 정치외교학과를 택하긴 했지만 서울대 국문과 입학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고 답했다.

정치인으로서, 행정가로서, 교수로서, NGO 대표로서 30여 년간 쌓아온 남다른 경험과 글솜씨를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이 집필을 권유했다고 한다. "책 써내는 일을 망설였지만 어떤 기자로부터 `당신이 책을 안 쓰는 것은 사회에 대한 직무유기`라는 최후통첩을 받고 틈틈이 써온 강의안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생각에 막힘이 없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그는 여성들에게만 인기를 얻는 정책에 급급하지 않았다.

김 구청장은 "지금도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일이 출산장려금 도입"이라고 말했다.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버티다 왜 우리 구는 장려금을 안 주느냐는 민원이 하도 많아 할 수 없이 주게 됐다고 했다.

"출산을 유도하려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그저 돈 몇 푼 준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의 자아실현을 돕기 위해 보육시설을 올해 45개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취임 직후 지역 어머니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토피 아동 엄마들의 고충을 듣고 `아토피 없는 친환경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이는 `아토피 없는 서울` 캠페인으로 다른 구에도 확산됐다. 갓 입주를 끝낸 아파트단지로 찾아가 주민들을 설득해 어린이집을 무상 임대했다. 어린이집은 취임 3년 만에 11개가 새로 늘어났다. 행정구역 통합으로 발생한 유휴 건물도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발간 2주 만에 자기계발서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의 책은 여성을 위한 조언이지만 자성도 담겨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비상이 걸린 시절 살처분을 위해 구청 직원들이 밤새도록 잔인한 작업을 했을 때 여성 직원이 한 명도 참여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가사에 파묻혀 남성들과 달리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소홀하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초`를 트레이드마크로 단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기까지 가사와 일을 병행하면서 겪어야 했던 `가슴 짠한 스토리`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복이 많은 것 같아요. 시어머니와 저는 집안의 셋째 딸이었어요. 셋째 딸끼리 통하는 정서적 유대감 때문에 모녀처럼 친밀하게 지냈어요. 시어머니가 잘 이해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군사 정권 시절 야당의 당직자가 되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김영삼 총재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에 당직자로 들어가자 대학 시절 은사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은사님의 걱정이 이해가 돼요."

당 사무처에서는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40대 중반에 정무차관이 됐다. 지금은 차관급 고위 공무원 중 40대도 적지 않지만 그때는 파격적이었다. 언론이 줄곧 최연소 여성 실세 차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고, 너무 이른 출세가 더 큰 성공의 걸림돌이 됐다.

`최초`보다는 `최고`, `1호`보다는 `1인자`,`유일`보다는 `롱런`이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왔다는 고백은 체험의 소산이다.

그의 삶은 스스로 택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메모를 해보세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을 글로 써서 정리하면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메모 습관이 한 권의 책을 엮어내는 저력이 되기도 했다. 공직을 희망하는 후배 `알파걸`들에게 그는 "공직은 세상의 다른 일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공직에 합당한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을 위해 헌신할 자세가 돼 있나, 이해가 다를 경우 내 이익을 버릴 수 있나, 진정으로 국가와 시민들, 이웃들을 사랑하고 봉사할 자세가 돼 있나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김 구청장은 "여자라서 망설이거나 포기해 버리는 순간,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로 밀려난다"면서 " `여자 동료`가 아닌 동료,`여직원`이 아닌 직원으로 승부하기 위해 두 배 더 과감히, 두 배 더 용감하게 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대로 `10점 만점에 10점`이 아니라 `10점 만점에 100점`을 따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어느 순간 20점, 50점의 평가를 받게 될 겁니다."

■ She is…

△1973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1년 한양대 정치학 박사 △1988년 통일민주당 여성국장 △1991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여성정책보좌역 △1992년 민자당 중앙정치교육원 교수 △1994~1995년 정무2차관 △1996~1997년 신한국당 중앙연수원 부원장 △1997년 신한국당 부대변인 △1997~2003년 대전대 경영행정대학원 객원교수(여성정책학) △1998년 세계가족보건연맹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이사회 이사 △1999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학과 연구교수 △2000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부회장 △2003~2005년 전문직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 △2002년 한나라당 부대변인 △2006년 7월~현재 제10대 서울시 송파구청장

[이창훈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